Blog thumbnail

충청북도 괴산군 속리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화양천을 중심으로 약 3㎞에 걸쳐 있는 아홉 계곡이다. 하류에서부터 순서대로 1곡부터 9곡까지 있으며, 주변 면적은 30,282㎡에 달한다. 하천 주변은 가령산(646m), 도명산(650m), 낙영산(746m), 조봉산(687m) 등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와 연관있는 유적들이 계곡을 따라 남아있다.

Blog thumbnail

괴산군 송면에서 동북쪽으로 1∼2km에 걸쳐 있는 계곡이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7송정(현 송면리 송정부락)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하여, 9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 한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는 없어졌지만 절경은 여전하다.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선유동문을 비롯해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이 9곡을 형성하고 있다.

Blog thumbnail

주왕산국립공원의 주방천 유로상에 있는 용추폭포는 높이 320m 지점에 3단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1단 폭포와 2단 폭포는 낙수 폭 약 2m, 낙차는 약 2m이며, 3단 폭포는 낙수 폭 약 2m, 낙차는 약 5m 이다. 1단 폭포 아래의 폭호는 선녀탕이라 불리며, 폭은 3m, 수심은 2m 정도이다. 2단 폭포 아래의 폭호(瀑壺)는 구룡소라 불리며, 폭은 8m, 수심은 1m 정도이다. 용추폭포 일대에는 용추폭포와 더불어 폭호가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등산로 옆의 기반암(응회암)에서 화성활동(火成活動)에 의한 수직절리와 피아메(fiamme)[응회암 노두에서 나타나는 렌즈 모양의 흑요석 결정체]도 관찰할 수 있다.

Blog thumbnail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구봉산(九峯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자하산(紫霞山)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속리산(俗離山)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컬었다.”라고 되어 있다.

Blog thumbnail

1791년(정조 15) 신해교난(辛亥敎難)으로 연풍지역에 은거하던 가톨릭 교인 추순옥(秋順玉)·이윤일(李尹一)·김병숙·김말당·김마루 등이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이다. 괴산읍에서 연풍, 문경 방면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고, 문경새재 서쪽 기슭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연풍면은 소백산맥의 산릉에 속한 험지여서 예로부터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은신처를 찾는 순교자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어 일찍이 신도촌이 형성되어 왔다.

Blog thumbnail

충청북도에서 추진한 내륙순환관광도로 명소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곳으로, 2000년에 개장하였다. 한지·도자기·목공예공방 등 3개의 공방과 전통찻집·전통음식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공방에서는 공예품 전시물과 공예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관람할 수 있고, 관람객들이 직접 만들어보는 간단한 체험을 할 수 있으며, 판매도 이루어진다. 도자기공방은 장작가마로 막사발과 옹기를 구워내는 도예가 김용문의 빗재가마 공방으로 전통 장작가마를 갖추고 있다. 도자기공방 위쪽에 자리한 한지공방에서는 닥종이인형과 한지로 만든 옷을 비롯하여 한지갓집(옛날 갓을 넣어두던 상자)·지호단지·지함 등 다양한 한지공예품을 관람할 수 있는데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안치용(충청북도무형문화재 제17호 한지장)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령민속공예촌은 괴산군의 화양·쌍곡·선유동계곡과 수옥정관광지, 속리산·월악산국립공원을 잇는 충청북도 내륙순환관광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다.

Blog thumbnail

법주사는 속리산 아래 자리한 유서 깊은 절로 신라 진흥왕 때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 법상종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한 곳이다. 곳곳에 많은 문화재들이 있어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90년에 새로 만들어진 청동미륵대불이다. 기단까지 합친 전체 높이가 33m이며 사용된 청동이 100여 톤이 넘는 거대한 불상인데, 원래 법주사의 중심건물이었던 용화보전이 있던 곳으로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장륙상이 천 년간 서 있던 자리라고 한다.